성인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쉼이 없습니다.”
쉼이 없고, 만족이 없고, 안정이 없는 삶은 고대인은 물론 현대인도 동일합니다. 유목민처럼 떠도는 현대인의 삶에서 쉼과 만족과 안정은, 끊임없이 꿈꾸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입니다. 홍수나 장마로 물난리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은 별로 없는 것처럼, 많은 활동이 있고 모임과 만남이 있지만 정작 만족감은 스쳐지나는 바람처럼 왔다가 쉬 사라집니다.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필요라고 할 수 있는 먹고사는 문제, 자유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이 결핍되거나 개인의 자유가 말살된 시대에는 그 목마름은 타는 듯 합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조국의 민주화를 노래했던 시인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창조주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셨습니다. 본래 창조하신 뜻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이 충족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인간 자신이 스스로 창조주 지위를 강탈하며 자기가 자기에게 절대자 노릇을 하려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창조주 노릇을 하려는 것이 죄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창조주를 삶의 원천이요 궁극적으로 숭배하는 대상으로 받들어 섬길 때에 삶의 질서와 평안이 회복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원리입니다.
사람이 피조물을 삶의 만족의 원천으로 삼을 때에는 쉼이 사라지고 만족도 사라집니다. 그 피조물에는 사람들도 있고, 돈도 있고, 직업도 있고, 몸도 있습니다. 사람이나 돈이나 직업이나 몸이나, 하여간 사람의 문화에 속한 것들은 그 자체로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만, 그 위치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올라가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섬기는 그 우상의 제단에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바치며 희생합니다. 시간을 바치고 열정을 바치고 일생을 바치고 건강을 바치고 돈을 바칩니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지이요.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종교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성이 종교입니다. 성공이 종교입니다. 안전이 종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이나 사물이나 대상들은 목적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수단의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피조물들을 목적으로 삼고 달려가면 계속 목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먼저 누리면, 나머지 것들은 우리 삶을 도와주는 수단으로 바른 자리에 있게 됩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