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계성 속에서 존재한다. 연결되고 하나 되면 관계성이 있는 것이고, 단절 되고 분리 되면 관계성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된 관계성 속에 있었다. 인류의 처음 조상은 창조주 하나님께 귀를 기울였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분의 말씀에 바르게 반응했다. 죄를 지어 타락하기 전에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바른 자세에 있었고, 피조물은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우리의 바른 관계는 그분을 향하여 직립하여 그분을 바라는 자세이다. 그 분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받는 자세이다.
그런데 죄와 타락은 우리가 창조물을 향하여 구부리는 것이다. 이것은 피조된 사물과 사람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관계의 깨어짐 이슈를 살펴볼 때, 언제나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누구 안에서, 또는 무엇 안에서 찾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찾지 않고, 사람이나 사물이나 피조물 안에서 자기를 찾으려고 하면 그것은 마음에서 우상이 되어버린다. 피조물을 향해 인간이 굽어질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피조물은 답을 주지 못한다. 피조물을 향해 굽어진 우리의 사랑은 이기적이 되고, 관계는 욕심과 자존심으로 얼룩진다. 피조물이 줄 수 없는 것을 피조물에게 기대할 때, 사랑은 집착이 되고, 질병이 된다. 받을 수 없는 것을 기대하고, 받아서는 안되는 절망도 받는다. 주어서는 안되는 상처를 주고,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받는다. 관계의 깨어짐과 뒤틀어짐과 꼬임의 현상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사람이나 사물을 향해 인간 존재가 굽어진 문제가 존재한다.
다른 것을 향하여 구부러진 인간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피조물을 향해 ‘굽어진 자세’를 똑바로 펴고, 그 굽어지는 성향을 완전히 버리며, 그리스도를 향하여‘똑바로 서는’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이것이 관계회복의 기초공사가 된다. 창조를 향하여 똑바로 서서 두 팔을 벌려 그분이 주시는 것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존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나의 새 신분, 칭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사람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소통이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하여 진정한 관계성이 시작된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피조물을 향해 굽어진 우리 존재를 탈피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반듯하게 서기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구부리고 있는지를 살피자. 이제는 우상을 향해 구부러져 있지 않고, 하나님께 반듯이 경청하며 관계성을 형성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피조물 안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굽어짐과 우상숭배적인 자세를 버리도록 기도하자. 내가 피조물을 향해 어떻게 구부러져 있는지 보게 해달라고 영적인 시력이 좋아지도록 주님께 간구하자. 주님이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에 의존해서 정체성을 찾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자.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