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성령 135 – 9일
시편 119.129-144, 창세기 27-30, 시편 41-45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증언들입니다. 옛 증언들과 새 증언들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있습니다. 성경의 증언 대상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런 막장이 있나 싶습니다. 교양을 추구하는 가족에게는 숨기고 싶은 추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추문은 숨기고 남의 추문은 퍼뜨립니다. 나의 부끄러운 일은 꽁꽁 싸매고 싶고, 남의 창피한 일은 발 없이 천리를 갑니다.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치욕, 가문 지도자의 수치, 조상 영웅의 죄악까지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명예-수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누구 하나 예외가 아닙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증언대상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온 몸에 암덩어리가 박혀 있는 환자를 살리는 의사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온 몸에 총알 파편이 박혀 있는 부상자를 살리는 의사와 같습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편애로 자식을 망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자녀를 키워야 했는데 그렇질 못했습니다. 에서를 에서대로, 야곱을 야곱대로 키우기 싫어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가 에서와 야곱을 축복할 때 그의 눈은 실제로 어둠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너는 누구냐”라고 반복해서 묻지만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식 관련해서 그의 영적 어두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업과 명예와 권력과 부를 자기 자녀에게 상속하려고 하는 세상 모든 부모가 이와 같습니다. 자녀에게 상속할 것은 신앙의 태도이지, 물질이나 지위가 아닙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해소되지 못한 인정욕구로 인생을 얼룩지게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온 인정 결핍은 이성에 대한 애정 욕구로 변질됩니다. 불같은 사랑은 불처럼 인생을 태웁니다. 7년은 사랑에 미쳐서, 또 7년은 배반에 속아서, 또 6년은 보상과 인정에 대한 갈망으로 흘러갑니다.
라헬은 어떻습니까? 질투와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언니에게 남편을 빼앗겼다는 분노의 불에 영혼이 불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원망이 솟구칩니다. 자식을 선물 받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더 달라는 뜻으로 ‘요셉’의 이름을 짓습니다. 몸종까지 남편에게 첩으로 바칩니다. 질투에 불타서 남편과의 관계에 최음제까지 동원합니다.
레아는 어떻습니까? 아무도 찾지 않는 슬픔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 남자도 청혼하지 않은 여자. 선택받지 못한 여자. 시력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쁜 동생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제부에게 덤으로 결혼합니다. 슬프고 기가 막힙니다. 아버지 라반은 이런 식으로 자기를 끼워팔아서까지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레아는 슬프고 비참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원하지만 남편은 레아를 철저히 외면합니다. 아이를 일곱이나 낳아도 레아와 같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첩 아닌 첩의 처지입니다. 그녀의 네 번째 아들 이름은 유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신앙이 고난 속에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레아마저도 라헬이 몸종을 첩으로 신분 격상시켜서 야곱에게 주고 아들들을 낳게 하자 머리가 돌아버립니다. 그녀의 몸종을 첩으로 지위상승시켜서 줍니다.
그 외에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아니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 욕망의 죄수가 아닙니까? 모두 이기심의 환자 아닙니까? 모두 누군가의 탐심과 자기중심성의 결과로 부상자가 된 것 아닙니까? 피해자이면서 또한 가해자가 되는 무한 상처 궤도에 올라탄 사람들이 아닙니까?
모두 구원이 필요합니다. 모두 자비가 필요합니다. 모두 치료가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러한 죄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낮은 곳으로 오십니다. 가장 강하신 분이 약한 존재로 오십니다. 제일 장 명예로우신 분이 수치스러운 자리로 임합니다. 제일 존귀한 분이 비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제일 거룩하신 분이 속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써가시는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2019. 1. 9.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