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다음에 사람에게 일을 주셨다.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이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식민지적 정복이나, 파괴적 군림과 거리가 멀다. 여기에 나타나는 단어들은 ‘왕’의 신분과 업무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천지를 다 통치하시는 왕이신데,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삶을 통치하는 분봉왕의 신분과 역할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대리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권을 갖고 일하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복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일이 복이었는데, 죄지은 이후에는 일이 저주로 바뀌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독립선언을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원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내재적 자원만 갖고 살겠다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를 거부한 이후에는 일이 고통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경작을 했는데도 아름다운 소출 대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얻고 “땀이 흘러야” 노동의 댓가를 얻고 그리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 때문에 일을 통해서 자기성취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아성취를 위해서 일하지만, 안팎의 경쟁이 치열하고, 경제구조나 업계 구조가 불의하기 때문에 실제로 자기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인이 ‘최고, 최대, 최초’에 집착하고 열광하는 이유도 자기성취감의 결핍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살기로 결정한 다음에 일은 자기성취의 수단으로 전락하나, 결코 자기성취를 달성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독립선언을 할 때에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통치원리 바깥에 나가기 때문이다.
성경은 일이 자기성취를 하고, 자기증명을 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원리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일하라고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재능과 기술, 지성과 감성과 의지력을 주셨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신자들이 사회비교와 무한경쟁의 정글사회 속에서도 일 자체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비결 중에 한 가지는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이 모습으로 두셨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인생 사는 동안 이루는 모든 성취들을 가지고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아무리 공을 세우고 성취를 이루고 자아실현을 한다한들 사람의 죄성은 변화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드릴만한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참으로 메시야 (구원자) 되신 것은 그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성취를 우리 대신 우리를 위해 이루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 가운데서도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자기존재를 입증하고 자기능력을 세상에 알리려고 전전긍긍하면서 비교의식과 우열의식에 빠져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다. 예수께서 나의 성취이시다. 내가 이루어야할 모든 성취들보다 예수를 얻는 것이 더 큰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아는 만족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얽매임없이 열심히 일한다. 종살이 하는 마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인의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주일’의 의미이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궁극적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성취와 안식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다. 칼빈이 말했듯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성취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의 참 성취가 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성취와 휴식에 참여한다. 고단함 가운데에서도 성취와 만족과 휴식을 누리는 인생이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