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자연적으로 친구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곳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다른 기관이나 조직과 다르게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고 섬기는 목적으로만 모입니다. 그래서 같은 출신, 같은 배경, 같은 관심, 같은 이익이 중심이 아닙니다. 일반사회에서는 함께 하지 않는 다양한 출신과 배경과 직업과 계층과 성향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빈부가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배움의 길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겸손하게 섬기고,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왕으로 예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끼리끼리 모이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설계도를 벗어난 것입니다. 부자끼리 모이고 있다거나 빈민끼리 모이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는 부요한 사람도 있었고, 극빈자도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일하는 고관도 있었고 신분상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정 지역 출신, 특정 학교 졸업자, 특정 계층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교회라면 생명력을 상실하고 본질을 잃은 것입니다.
이 세상나라의 가치는 부귀 (권력을 얻게 하는 것), 편안 (몸이 배부른 것), 출세 (성공을 자랑하는 것), 그리고 명예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4-2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부귀하고 편안하고 출세하고 명예 얻는 것에 마음을 두는 자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지금 미약하고 희생하고 슬퍼하고 외면당하는 편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20-23). 이것은 부귀, 편안, 성공, 명예가 그 자체로 나쁘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나라의 가치가 주장하는 절대성을 의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들은 주님이 선물로 주시면 감사한 것이고, 또 받은 사람의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가난하고 불편하고 실패하고 무시당하는 것을 추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겪는 상황에 있을 때에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깨닫고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할 때에 누리게 되는 놀라운 특권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나라의 가치들의 횡포에 군림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나라의 가치들이 절대화되어서 사람들을 예속하는데, 그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있어도 으스대지 않고 없어도 기죽지 않습니다. 있어도 겸손하고 없어도 자신감이 있습니다. 있으면 의무인줄 알고 잘 사용하고 없으면 인내하며 감사하며 주님의 때를 잘 살핍니다. 예수님에게 나의 마음을 열고 인격적으로 곧 나의 지정의로 주님을 초청하면 주님께서 우리 내면에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내면적 변화들이 신자의 마음 안에서 일어날 때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변화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같이 은혜모르고 악한 사람에게도 무한히 자비하신 것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6:35-36).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도 관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원수같은 사람에게도 주님의 마음을 갖고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선대하고, 대가없이 베풀게 됩니다 (눅 6:27-34).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대하시고, 대가없이 베풀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시며, 나에게 끝없이 선을 베푸시며, 아무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정치성향이 다르고, 출신지방이 다르고, 경제계층이 다르고, 그밖에 모든 것이 다를지라도 사랑하고, 선대하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닌 한 모든 인간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용광로 안에 쇳덩어리가 녹듯 녹아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시는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