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성경과 예수님은 하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어머니’로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육이 아니고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처럼 생물학적인 성을 갖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부활하면 남자도 여자도 없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나 여자와 같은 생물적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성경에서 칭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아버지 상은 ‘창조하고, 건설하고, 주도하고, 부르시고, 공급하시고, 지키시는 존재’입니다. 성경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반응하고, 보호하고, 위로하고, 이해하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으로 제시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피조물로서 마땅히 경배와 충성을 드려야 할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힘들어 하는 분들이 요즘 시대에 많아졌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아버지 상이 너무나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윽박지르고 혼내고 군림하는 무시무시한 가부장적인 아버지 모습들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오버랩되어서 힘든 것입니다. 또 어떤 아버지들은 조종하고 이용하고 괴롭히고 학대하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정신적 폭행, 감정적 폭행, 신체적 폭행을 당한 경우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어떤 경우들에는 비겁하고 야비한 아버지들도 있습니다. 자식을 나몰라라 하고 자기만 위해서 사는 이기적인 아버지들이 이 세대에는 드물지 않습니다. 한국의 오랜 유교적 전통에서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들은 자신의 성공과 사회생활은 ‘대’라고 여기고, 가정과 자녀는 ‘소’라고 생각해서 가정에 대한 책임을 유기하고 외면했습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들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은 시를 지어 기도하기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편 27:10)고 했습니다. 다윗의 부모가 다윗을 버린 일이 있었는지는 성경 다른 부분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런 심경을 많은 자식들은 느끼곤 합니다. 내가 가장 힘들고 외롭고 고통 느낄 때에 부모가 나를 이해 못하고 함께 하지 않는 순간들이 꼭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참 아버지’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 계’셔서 모든 만물과 사건 위에 초월적으로 통치하시고 주관하시고 그 자녀를 반드시 도우시고 책임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세상에서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며 고아처럼 살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여주신 ‘진정한 아버지’입니다. 버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참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를 모두 구원하셔서 자녀 삼아 주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나 혼자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사랑하시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참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경멸하지 않고, 배제시키지 않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함께 하나님의 자녀되어서 함께 가족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함께 누리고 나누길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초월하여 다스리시는- ‘우리’-나 혼자만이 아니라-‘아버지’-사랑하시고 책임지시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