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은 왜 기독교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교회에는 왜 이렇게 타락한 모습이 많은지 의아해 합니다. 교회 안에 탐욕을 사랑하고 권력을 탐하고 떼를 지어 악을 행하는 모습들을 볼 때에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냐고 질문이 나올 만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우리가 잘 살펴본다면 현실 교회에 그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에서조차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은 불편해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십자가 복음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도 온 우주의 창조주가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서 비참한 대속의 죽음을 받으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가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불편한 것입니다. 서로에게 칭찬과 인정을 해주는 것도 모자란 판국에 복음은 인간의 치부와 취약점을 사정없이 보게 합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만으론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복음의 내용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면 나의 노력과 실력과 고생은 다 소용이 없는 것이냐고 항변이 올라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일을 하셨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구원을 누리게 되는지를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어려운 대화를 수반하기도 합니다.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을 직시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세계관에 근거해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오해를 바로잡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누리며 살아가려면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야 합니다. 만일 이 작업을 하지 않고,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위주로 교회가 이야기한다면 교회는 거룩의 이름을 쓴 타락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의 이름을 쓴 사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라는 이름과 성도라는 이름은 있지만 복음도 능력도 없는 종교집단, 이해집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타락한 세상 속으로 예수님은 오셔서 복음이 되신 것입니다. 이리와 금수가 들끓는 곳으로 사랑의 예수님이 오셔서 양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팀 켈러 목사님이 쓴 ‘왕의 십자가’를 소개합니다.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마가복음의 예수님 이야기를 통해서, 베드로가 만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과 영광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모든 것이 옵니다. 예수님을 놓치면 종교의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 껍데기 종교에 사람들은 열광하다가 그 껍데기를 버립니다.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잡으십시오. 예수님을 잡으십시오. 예수님을 다시 만나십시오. 십자가의 예수님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직시하면 그 속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양약과 같습니다. 입에는 씁니다. 몸에는 좋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의 삶은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난절 기간입니다. 부활절 전에 40일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한국교회는 부활절 직전 1주일을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념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에서는 40일을 렌트 (Lent) 또는 패션(Passion)이라고 해서 지켰습니다. 고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기간에는 금식, 금욕, 참회를 합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주야 동안 시험 받으신 것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금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난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번 수난절 기간은 3월 31일 부활절까지 2주가 남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왕의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