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목회에 대한 관점의 변화
한국의 대도시 도심에는 어김없이 큰 교회들이 있습니다. 소위 대형교회라고 부르는 교회들이 도심에는 많이 있습니다. 뉴시티교회가 모이고 있는 지역은 아주 두드러집니다.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양재, 충현교회, 강남순복음교회가 주변에 있습니다. 좀더 멀리 가면 소망교회, 광림교회가 있습니다. 인근에도 1천 명 이상 모이는 중대형 교회들, 수십년 이상 된 중형교회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교회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심에 큰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사이 사이에는 영적인 공백이 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고 싶지만, 마땅히 갈 교회를 못찾고 있습니다. 영적인 질문들은 있지만,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교회들을 찾지 못해서 발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 영적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는 작고 좋은 교회들이 계속해서 생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수십년 된 교회들도 갱신되어야 하지만, 한계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좋은 교회들이 계속해서 생겨서 교회 생태계가 풍성해져야 합니다. 대형교회가 있으니까 작은 교회가 안된다는 관점을 바꾸자고 제언합니다.
현대 도시에 대한 목회적 이해
현대 도시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A. 정착농경사회에서 이동유목사회로의 변화
B. 인접연결사회에서 연고연결사회로의 변화
C. 단일품종 대량생산사회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사회로의 변화
현대 도시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동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진학, 직장, 결혼, 자녀교육, 퇴직, 건강 등의 이유로 이사와 이동이 아주 잦습니다. 3년이면 이웃의 50%가 달라지는 것이 현대도시입니다. 온 주민이 수십 년 동안 한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참된 목자’를 저술한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18세기에 영국의 농촌마을에서 1천5백 명의 성도를 매년 일대일 심방하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도가 1천5백명이면 목회자가 성도를 일일이 알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만큼 들고나고를 많이 하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큰 교회를 지향하기보다 크지 않지만 좋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교회의 효과적인 존재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극장과 경기장의 관람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관계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까닭입니다.
전에는 옆집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같은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웃사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적인 근접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적 밀착성입니다. 요즘은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미장원에 가고 병원에 가고 학교를 선택합니다. 교회가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 있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사람이 추천하면 제법 먼 거리라도 갑니다. 평소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넘어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도시의 높아진 이동성에도 불구하고 지역교회는 지역성을 담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전도의 중요한 통로가 주소가 가까운 것보다는 관계가 가까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시사점입니다.
현대도시사회는 외형적 유사성과 동조성에 불구하고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습니다. 1천만명이 보는 영화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예술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찾는 매니아층이 상당합니다. 아이돌 음악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지만, 인디음악을 애호하고 찾아다니는 매니아들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 추구하는 것, 중요시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이 정말로 다양합니다. 수십년 전에는 짜장면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피자의 시대입니다. 수십 개의 피자 브랜드마다 십수 개의 피자종류를 자랑합니다. 고객은 원하는 재료와 토핑과 빵의 두께를 결정해서 주문을 합니다. 피자를 처음 시키는 사람은 무슨 옵션이 이렇게 많은지 어리둥절할 지경입니다. 이러한 세분화된 개인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합니다. 과거의 탈농어촌 경제개발시기에나 통했을 법 싶은 단일모델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가 아니라, 이제는 각각이 자기만의 관심사, 자기의 기호, 자기의 질문, 자기의 세계를 갖고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 소량유통, 소량소비 사회인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할 때 10명 있으면 10명이 질문이 다 다릅니다. 같은 본문을 대해도 생각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깊이 파는 질문을 다른 사람들은 아예 생각조차도 안해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합니다. 다만 표현을 안하고 있을 뿐, 십인십색, 백인백색으로 다른 생각, 다른 질문, 다른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도화된 프로그램으로 굳어진 신앙훈련으로는 머리가 시원해지질 않고 가슴이 채워지질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