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원 짜리 밥을 먹다가 5만원 짜리 밥을 먹으면 맛이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5천원 짜리를 별탈 없이 잘 먹고 있다가, 어느날부터 5만원짜리를 먹기시작하면 다시 5천원 짜리 먹기가 싫어진다. 그러다 15만원짜리가 먹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맛의 경험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달라진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는 왕의 진미를 거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니엘은 14세 정도의 나이에 왕립인재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3년의 기간 동안 바벨로의 최고 학문과 언어를 연마한다.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신 것은 그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미란 최고의 진귀한 음식들이다. 왕의 식탁을 만들 때 함께 만드는 최고의 호사스러운 음식이며, 왕이 마시는 최고의 포도주이다. 다니엘은 이 특권을 거부했다. 그는 왕의 진미와 왕의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실, 왕의 진미는 먹어도 죄가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음식들이 우상에게 제사지낸 음식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니엘서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다. 또 그 음식들이 모세오경에 나오는 정결법과 어긋난다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언급이 없다. 성경에서 독주는 금하지만 포도주는 금하지 않는다. 음식 자체로는 괜찮다. 진귀한 음식, 좋은 음식 자체는 문제가 안된다. 만일에 비싼 음식은 무조건 안되고 싼 음식은 무조건 좋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라, 종교의 탈을 쓴 율법주의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더럽힘당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말인가? 왕의 진미가 의미하는 것은 그 세계의 가치와 우선순위이다. 바벨론의 호화로운 음식을 먹고 바벨론의 사치스러운 문명에 동화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바벨론의 최고의 포도주를 먹고 바벨론의 가치관에 취하라는 메시지가 거기 심겨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가 의미하는 비싼 음식, 비싼 의복, 비싼 집, 비싼 취미, 비싼 여가에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바벨론의 언어를 배우고, 바벨론의 학문을 익히고, 바벨론 왕을 위해 일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의 심장은 바벨로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뜻을 정하여’라는 의미이다. 성경의 원문은 다니엘이 자신의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표현한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것은 그가 거룩하고 높은 야망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의 심장을 세속의 헛된 우상으로부터 수호했기 때문이다.
설탕물을 너무 먹은 아이는 밥을 제대로 못먹는다. 과자 맛을 일찍 알아버린 아이는 밥맛을 알지 못한다. 눈먼 돈의 맛을 알아버린 공직자나 정치인은 그 맛을 잊지 못해 결국 부패스캔들에 연루된다. 물질문명의 맛에 우리의 영혼이 녹아들면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감각이 마비된다. 맛의 싸움이고, 마음의 싸움이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맛보는 사람이다. 진리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예수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성경말씀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국교회가 제 맛을 내게 된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전인격적인 앎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아는 것이다. 왕의 진미가 그대의 미각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그것을 거부하라. 그대의 심장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우라.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