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목 성경읽기와 기도

10월 19일 목 성경읽기와 기도
예레미야 애가 3:21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22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23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이사야 32:15 그러나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고
그의 능력이 무궁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 희망을 두면 살아납니다.
사람의 약속은 바람결에 날아가도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처럼 견고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영원할 뿐 아니라
아침 이슬처럼 매일 새롭게 임하기에
하루하루 새로운 생명으로 오십니다.

인간의 의식과 의지는 의존할 바 못되지만
하나님의 영은 영원한 나라의 삶을 주시지요.
사람은 사람과 운명을 못바꾼다고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사람도 운명도 바꾸어요.

오늘 믿음의 길로 한 걸음 선택한다면
그 한 걸음이 모여 천리 길 내달음이 될 거에요.
주님은 그 처음 마음을 기뻐하시는 사실이지요.

물음 속에 믿음으로 다음 길을 간다면
신음과 울음의 마음에도 복음이 임하여
속마음에 깨달음 솟아 웃음짓게 되지요.

10월 17일 화 성경읽기와 기도

10월 17일 화 성경읽기와 기도

이사야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온갖 죄악의 결과로 예루살렘이 파멸할 때에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기를 잊지 않으셨어요.
수술의 목적이 더 건강해지는 것이듯
고난의 목적도 더 건강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오래오래 기다리는 것도 싫어해요.
숨차게 급하게 몰아치는 것도 싫지요.
너무 힘들면 당연히 입이 삐죽 나오고요.
너무 행복해도 어딘가 불안하지요.

기다림이 길어질 때도, 긴박하게 일할 때도
하나님의 뜻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불의를 행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모든 일 속에서 선을 만드세요.

태풍이 나쁘다고 사람들은 원망하기도 하죠.
하지만 태풍이 있어서 바다가 살아나지요.
태풍 때문에 과일이 떨어졌다고 불평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래서 과일은 더 맛있게 여물어요.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다시 살리시고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세요.
하나님을 찾고 만나면 해피엔딩이 오지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면 결국 이깁니다.

 

10월 18일 수 성경읽기와 기도

10월 18일 수 성경읽기와 기도
이사야 30:5 새가 날개를 펴고 둥지의 새끼를 보호하듯이, 만군의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 감싸 주고 건져 주며, 다치지 않게 뛰어넘어서, 그 도성을 살리신다. (새번역성경)

한번 잡으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자에게는
자신의 것을 지키는 강한 집착이 있어요.
하나님은 사자의 비유를 들면서
그런 근성도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하셨어요.

높은 곳에서 집을 짓고 사는 독수리에게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는 보호본능이 있지요.
하나님의 독수리의 비유를 들면서
그런 보호도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하셨어요.

동물의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네요.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지킨다.
나는 너를 보호한다. 감싸고 건진다.
다치지 않게 한다. 반드시 살린다.

내가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셨어요.
내가 주님을 몸바쳐 섬긴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몸바쳐 섬겨주셨어요.

주님이 내게 등돌린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에게 등돌렸던 것이지요.
주님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버렸던 것이 것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세요.
영원히 함께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하나님은 당신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과 동행하세요.

10월 16일 월 성경읽기와 기도

10월 16일 월 성경읽기와 기도

예레미야 49:16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49:33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이사야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예레미야 49장 16절은 요르단 남부에 있는 바위 도시 <페트라>에 대한 심판 예언이에요. 에돔의 수도였고, 천년 이상 부강한 무역도시였어요. 그들은 수십미터 넘는 바위산들에 건물을 지었죠.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사라졌어요. 근대에 베두인 목동들이 발견해서 지금은 요르단의 관광지가 되었지요.

예레미야 49장 33절은 갈릴리에서 북부지역에 있는 도시국가 <하솔>에 대한 심판 예언이에요. 하솔은 유력한 도시국가였는데, 발견된 유적지가 1백만평 정도 되는 대단한 고대 도시였지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되고 말았어요.

눈으로 확인되는 것만 다 진실인 것은 아니지요. 눈으로 안보이는 더 확실한 진실도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성경은 알려주어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는 성경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땅들의 이야기가 보존되어 있어요.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해요. 성서 배경 국가들을 가서 보면, 3천년 전, 2천5백년 전에 지어진 성벽, 성문, 창고, 군사 시설, 지하수로 등이 즐비해서 놀랐어요.

시간의 주관자이신 주님께 우리 인생의 시간표를 공유하라고 성경은 말해요. 악에는 벌을 내리시는 정의로운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지요. 나쁜 사람 미워하느라 에너지 쓰지 말라는 것이지요.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심판은 맡기고 선한 곳에 에너지를 쓰라는 것이에요.

오늘을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지요. 마음으로 돌이키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수여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 우리에게 계셔서 참 다행이에요. 우리도 생명을 나누고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산다면 주님의 시간대에 사는 것이겠죠?

10월 14일 토 성경읽기와 기도

10월 14일 토 성경읽기와 기도
이사야 28:16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새번역)

예레미야 45:5 바룩아, 네가 너 자신을 위하여 큰 일을 찾고 있느냐? 그만두어라. 보아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목숨만은 내가 건져 주겠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쉬운 성경)

다수의 사람들이 질병으로 아프고
소수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 현실이지요?
아픈 사람이 다수이죠. 다수는 일반적인 현상을 가리켜요.
건강한 사람은 소수이지만, 소수가 비정상은 아니에요.
건강한 삶이 정상이니까요. 정상적이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잖아요.
다들 아프니까 나도 아파야지 마음먹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어요.
많은 사람의 편에 서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예레미야와 바룩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소수였어요.
왕과 왕자들과 귀족들과 지도자들은 다수였어요.
그들은 애굽에 가야 산다고 생각했어요.
애굽의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고 제사도 지냈어요.

예레미야는 급기야 애굽으로 끌려갔어요.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여러 번 가두었어요.
하나님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그래도 올바른 복음을 전했지요.
예레미야가 아무리 하나님을 말씀을 전했어도
사람들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하늘여신을 섬길 때 먹을 양식이 풍족했다고 그리워했어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부족하게 되었다는 불평이었어요.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뜻을 알려주셨어요.
그러나 백성들은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죽이려 한 것이었죠.

예레미야를 돕는 사람이 바로 바룩이었어요.
바룩의 마음은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룩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모두 죽게 되는 상황에서도 지켜주신다고 하셨어요.

예레미야가 애굽에 끌려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어요.
그래서 예레미야는 힘들지만 평안했어요.
불편했지만 당당했어요.
생명의 문은 좁아요. 그렇지만 살 수 있어요.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의 문이라고 하셨어요.
좁은 문인데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 통과해야해서 그래요.
군중에 묻어가는 길이 아니니까요.
병원에서도 수술대에 한 명씩 누워서 치료받잖아요.
운동기구에도 한 명씩 올라가서 뛰잖아요.
엄마는 한번에 한 입씩 아이를 먹이잖아요.
좁은 문인 것은 내가 주님의 문으로 들어가야해서 그래요.

그문으로 들어가면 생명이 있어요.
더이상 불안하지 않아요.
미래의 희망이 오늘로 들어와요.
전쟁이 나도 겁나지 않아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하나님이 그대를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마음에 꼭 새기기를 진심으로 바래요.